趙基錫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기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황주읍(黃州邑)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조기석은 천도교 신자로 이날 오후 2시경 수백 명의 천도교들과 함께 황주읍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대열이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 일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제지하며 김병식(金炳植) 등 주동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분노한 군중은 경찰서로 몰려 들어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리창을 부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다시 읍내로 돌아온 시위군중은 예수교 예배당 앞에서 대열을 정돈하고 일제히 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예수교인들도 동참하여 인원은 더욱 증가하였다. 시위대열은 계속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마침내 읍내는 온통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경찰과 소방조(消防組)까지 동원하여 감시와 순찰을 엄중히 하였다. 오후 5시경, 천도교인들이 교구실로 들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일경이 교구실로 들이닥쳐 천도교도와 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 연행하였다. 조기석은 이날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소하였으나,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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