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篤祜
1843-11-06 ~ 1914-09-0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독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청송(靑松) 사람이다. 1896년 1월부터 4월 사이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조독호는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896년 1월 심성지(沈誠之) 의병장이 경북 청송에서 100여 명의 병력을 모아 거의(擧義)하자 이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은 1896년 거의 후 2월 조직을 갖추고, 4월 일본군과 교전하여 7∼8명을 사살하는 등 경북 청송 일대에서 일제에 대한 무장투쟁을 감행하였다. 그는 의진의 참모(參謀)로 활동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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