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玭
1906-08-13 ~ 1945-04-0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조동비, 時柏, 初漢, 趙時栢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동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동빈은 1922년 3월 전북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7월 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교에 가담하여 퇴학을 당했다. 1926년 4월 서울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여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이에 크게 공감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29년 4월부터 조동빈은 제동(濟洞)에서 삼평사(三平社) 기자가 되어 잡지 『평론(平論)』의 발행에 관계하였다. 1930년 1월, 간도공산당사건 출옥자의 위로회에 참가하였다가 동대문경찰서에 검거되어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관련자로 취조를 받고 구류 25일을 받았다. 그 후 조동빈은 전주읍 완산금융조합의 서기로 재직 중 전주읍 사무소 서기 최경득(崔庚得), 전주 공화자동차부 사무원 조희문(趙熙文) 등에게 1932년 4월 중순경부터 9월경까지 수십 회에 걸쳐 현 사회제도는 불합리하므로 변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확고한 이론을 파악해야 된다며 독서 지도를 했다. 일제는 1933년 4월부터 이리경찰서를 중심으로 서울과 경북 밀양 등지에서 조선공산당 관련자들의 대대적인 검거를 실시하였는데, 조동빈은 이때 체포되었다. 1934년 3월 19일 조동빈은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1934년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앞서의 판결을 그대로 내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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