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善
1908-06-29 ~ 1957-04-1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동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29년 4월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 3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 악질적인 교사들을 배척하기 위한 운동을 주동하다가 퇴학당하고, 일본 동경(東京)에서 입명관대학(立命 大學) 전문부에 진학하였다가 1931년 11월 귀국하여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 뒤 1931년 12월 중순 전남 완도(莞島)에서 동지들과 함께 완도군 내의 농민운동과 어민운동의 활동방법을 협의하고 유력한 인사들을 이 운동에 참가시키고 동지를 규합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2년 11월 완도농민운동을 위하여 우선 소작인과 어업조합원들을 동원하여 소작쟁의(小作爭議)와 어업조합 폐지운동을 일으키고 야학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등 항일투쟁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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