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明善
1901-02-05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명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咸鏡南道) 원산(元山)에서 출신으로 중국 간도 무송현(撫松縣) 서대령(西大嶺)로 이주하여 공정단(公正團)에 가입하였다. 1924년 음력 7월 중순 안도현(安圖縣) 소사하자(小沙河子) 근방에서 대동회(大同會) 이영숙(李英淑), 대동청년회(大同靑年會) 차응호(車應鎬), 적기단원(赤旗團員) 이용권(李龍權) 등과 함께 길림성 연길현 수신사 비암촌(飛岩村)에서 군자금 모금을 계획했다. 조명선은 자금 모집을 위해 이영숙으로부터 임명장‧독립공채증권‧선전문 등을 받았고, 이용권과 차응호는 권총 등 무기를 수령했다. 1924년 10월 18일 조명선 등은 비암촌에서 군자금 9원을 모집하였다. 이후 비암촌의 김연기(金淵基)에게 22원, 김순영(金淳永)에게 21원, 엄주환(嚴柱環)에게 18원 등 총 7명의 재산가로부터 군자금을 거두었다. 이처럼 조명선은 북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24년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5년 2월 2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강도‧제령 제7호 위반’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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