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汶大
1931-01-12 ~ 2000-02-0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문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42년 7월경 경남 창원군 창원면(昌原面) 동정리(東井里) 소재 창원신사(昌原神社) 뒤 숲속에서 보통학교 출신의 급우 오경팔(吳慶八)·박대근(朴大根)·김명수(金明守)·박상규(朴相圭) 등 10여 명의 학우들과 함께 비밀결사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국을 강점한 이래 일관되어 온 것이었으나 1931년 만주침공 이후 강화되었으며,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폭압적으로 자행되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일제는 소위 국민총동원체제 아래 민족말살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해 갔다. 이에 평소부터 항일의식을 길러 왔던 그는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이는 등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이들의 활동이 1944년 12월 일본군 진해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