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秉斗
1877-11-06 ~ 1958-11-0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병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읍(盈德邑) 남석동(南石洞)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에서는 권태원(權泰源)과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장로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는데, 주도자들은 3월 18일 영덕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진행하였다. 강우근은 금호동 교회에 속하는 영덕면 화개동(華開洞)과 금호동, 남정면(南亭面) 남정동(南亭洞)의 기독교인 50여 명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몰래 지니고 장터로 나갔다. 예수교 북장로파 신도였던 그는 3월 18일 아침 영덕 장터로 가는 길에 박윤규(朴閏奎)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해 듣고 이에 찬동하여 적극 참가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날 오후 2시경, 장터에는 속속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이때 강우근이 50여 명의 교인들과 더불어 장터 한복판에 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강우근은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강제 연행하는 한편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로 인해 조병두는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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