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秉燦
1911-08-18 ~ 미상·현대
이명·자·호 曺秉燦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병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1년 8월 18일 중국 북간도(北間島)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 내풍동(內豊洞)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성군(鏡城郡) 주남면(朱南面) 수남동(水南洞)이다. 1929년 음력 9월 상순 수신향 내풍동에서 노창호(盧昌浩)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조병찬은 노창호가 책임자인 고려공산청년회 내풍동 야체이카에서 활동하였다. 그 외에 전성홍(全成弘)‧조웅섭(曺雄燮)‧조웅범(曺雄範) 등이 함께 활동했다.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1930년 4월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제3차 간도공산당 사건으로도 불리는 국제공산당조직기념일 만세시위 사건으로 체포된 조병찬은 1931년 12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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