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炳夏
1897-06-09 ~ 1947-11-1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병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여주군 주내면 상동리(州內面 上東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한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아무일 없이 극히 평온한 실정이었다. 그는 이에 분개하여 1919년 3월 26∼27일 양일간에 걸쳐 동지 심승훈(沈承薰)을 찾아가서 거사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리고 적극적인 찬동을 얻은 다음에는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 지방에서는 이렇게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심히 부당하므로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자"고 종용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