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秉學
1868-01-2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병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갑산군(甲山郡) 회인면(會麟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갑산에서는 1919년 3월 8일 경 단천의 천도교구에서 독립선언의 소식을 전해오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조병학은 3월 15일 오후 2시 회인면 후지리(厚地里) 천도교 교구에서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조병학은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며,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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