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炳薰
1899-02-01 ~ 1969-03-1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병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당시 안성군 양성면 조일리(陽城面 照日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양성면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원래 양성은 별개의 군으로 있다가 안성군으로 합친 곳인 만큼 양성읍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면사무소는 둘로 갈라졌지만 경찰주재소는 안성읍에만 있었다. 처음에는 양성면과 원곡면이 각각 별도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켰다. 그는 1919년 4월 1일 먼저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의 기세를 올렸고 다음에 양성읍으로 행진하여 합세한 시위군중 2천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렬을 선도하여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우편소 등에 몰려가서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1920년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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