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思明
1876-05-08 ~ 1973-05-2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사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안동군 예안면 귀단리(禮安面 歸團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조수인(趙修仁)·김진휘(金鎭暉)·조병건(趙炳建)·이맹호(李孟鎬)·이회림(李晦林)·조방인(趙邦仁) 등 7명과 협의하고 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동년 3월 17일 오후 3시경 예인장터와 경찰주재소 앞에서 수천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중인 동지들의 방면을 요구하면서 기물을 파손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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