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聖學
1882-04-13 ~ 1961-05-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성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共立協會)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미주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사법원, 1910년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학무원, 공동회 재무, 1911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법무원과 재무원, 1912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서기 겸 재무, 1913년 북미지방총회 재무 겸 학무원,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4년 북미지방총회 부회장 및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회장 이대위(李大爲)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정부로부터 북미지방총회를 자치기관으로 인정받았다. 1919년 북미지방총회 법무원, 적십자회 북미지방총회 검사, 1920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 1921년과 1926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산하 오클랜드 수금위원, 1928년 대한인국민회총회 총무, 오클랜드지방회 서기,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대한인국민회총회 총무로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 대한인국민회총회 선전부의 명령으로 오클랜드에 선전부를 설치하였고, 1932년 총회 재무, 1933년 총회 재무이자 신한민보 재무, 1937년 오클랜드지방회 집행위원이자 서기, 총회 중앙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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