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永化
1899-10-26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趙承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영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평북 천마산을 근거로 조직된 천마산대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28년 중국 봉천성 환인현에서 참의부에 가입하여 제5중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9년 국민부에 가입하여 국민부 군대인 조선혁명군 제3중대 제3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2월에서 1920년 3월 사이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천마산대(天摩山隊)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28년 음력 3월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이차구(夷?溝)에서 참의부(參議府) 제5중대장 박창식(朴昌植, 일명 金剛)의 권유로 참의부에 가입하여 제5중대 대원으로 같은 해 음력8월까지 활동하였다. 1929년 4월 만주 일대의 독립군 단체인 참의부(參議府), 신민부(新民府), 정의부(正義府)가 하나로 통합하여 남만주 일대의 유일한 혁명군정부인 국민부(國民府)를 창립하자, 같은 해 음력 4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제3중대 제3분대장 양달해(梁達海)의 권유로 국민부에 가입하여 조선혁명군 군인이 되었다. 같은 해 음력 9월 15일 조선혁명군 제4중대장 문시영(文時永)의 지휘 아래 김문거(金文擧), 김문호(金文浩), 이동진(李東振) 등과 함께 봉천성 신빈현(新賓縣)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 5월 국민부 군대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소속 임기홍(林基弘)·최병환(崔炳煥), 임우송(林宇松), 사병익(史秉翼) 등과 같이 신의주 대안(對岸)에서 체포되었다. 1932년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9월 4일 출옥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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