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玉來
1922-04-30 ~ 미상·현대
이명·자·호 巴山玉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옥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선청년맑시즘연구회’는 1941년 2월 이시카와현 제4고등학교 조선인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체이다. 당시 이시카와현 제4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박응포는 조선동포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해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이때 조옥래는 박응포에게 마르크스주의 독서연구회 조직을 제안했고, 이로써 ‘조선청년맑시즘연구회’가 만들어졌다. 연구회 회원은 각자 번호를 가졌는데 조옥래는 박응포, 최동명(崔東明)에 이어 3번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조선의 사회혁명을 목적으로 유학생들의 일상적인 모임인 독서회, 환송회 등을 적극적인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했다. 아울러 창씨개명의 문제, 언어의 문제, 지원병제도의 문제 등과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독립에 이르는 길, 중일전쟁의 전망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조옥래는 1942년 2월 18일 체포돼 같은 해 4월 11일 가나자와지방재판소(金澤地方裁判所) 검사국에 넘겨졌다. 조옥래는 1943년 4월 30일 도야마지방재판소(富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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