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庸錫
1861-08-21 ~ 1920-11-03·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용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당하자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남만의 통화현(通化縣)으로 망명하였다. 1918년에는 통화현 반납배(通化縣半拉背)에 아우인 후석(厚錫), 그리고 승진(承震)·김기전(金基甸) 등과 함께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으며 한족회(韓族會)의 일원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배달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일본군들이 재만 동포들을 학살할 때에 통화현에서 배달학교 교감 김기선(金基善), 교사 조동호(趙東鎬)·조용주(趙龍珠 : 그의 손자로서 그를 방문중이었음) 등과 함께 체포되어 학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