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鏞周
1891-08-24 ~ 1937-12-0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용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 연천(漣川) 사람이다. 그는 1913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친형인 조소앙(趙素昻)과 힘을 합쳐 상해(上海)에서 아세아민족반일대동당(亞細亞民族反日大同黨)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1916년에는 상해에서 대동당(大同黨)의 결성을 주도했고, 1917년의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 때에도 조소앙의 활동을 도왔다. 그리고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길림(吉林) 있던 그는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의 작성에 참여하였고, 다시 상해로 넘어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헌장(臨時憲章)을 기초하기도 하였다. 한편 동년 5월에 조소앙이 국제무대에서의 외교활동을 위해 구주(歐洲)로 떠나기에 앞서 그는 동년 4월 말경에 외교활동에 대한 지원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와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5월에 서울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독립정신의 보급 및 선전과 아울러 세계 각국에 외교원을 파견하여 독립 실현을 보장받는데 목표를 둔 단체로서 국내의 각처와 국외의 상해에 지부를 설치하고 조소앙의 외교활동에 대한 지원 및 선전활동을 폈다. 이때 조용주는 동단의 외교원으로 선임되어 활약하는 한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자매단체인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를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로 발전·개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그는 상해와 국내를 왕래하며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활동을 지도하다가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의 궐석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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