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元祥
1858-04-16 ~ 1925-11-1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원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일 오후 6시경 김태호(金泰昊)·이백순(李伯純)은 충남 논산군(論山郡) 욱정면(旭町面) 천도교 논산교구실에서 익산군(益山郡) 함열교구원(咸悅敎區員) 민영순(閔泳淳)에게 부여교구(扶餘敎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을 의뢰받고 이를 승낙하여 40매를 건네받았다. 이날 밤 9시경, 김태호는 부여면 교구실로 돌아와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을 불러 자신이 받아온 독립선언서의 배포를 의뢰하였다. 이들은 이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를 교부받는 한편, 즉시 당시 교구실에 있던 박성요(朴性堯)·최규석(崔奎錫)과 함께 이날 밤 배포방법을 논의하고 각각 배포 책임을 분담하였다. 조원상은 이튿날 오전 2시경에 부여면 왕포리(旺浦里) 손익희(孫益熙)의 집에서 황우열을 만나 취지를 전해 듣고 배포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 5매를 건네받았다. 그는 즉시 출발하여 그 중 2매는 부여면 중정리(中井里)와 염창리(鹽倉里) 노상에 살포하고, 3매는 이날 5시경 김덕빈(金德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주어 교부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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