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仁賢
1891-04-1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趙大海, 趙海龍, 趙大陳, 趙雲, 趙石範, 吳海龍, 吳雪, 吳丁龍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인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인현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율면(古津面) 선상리(仙上里) 출신이며, 1920년대 초 통의부(統義府)에 가입하였다. 이후 동부(同府)의 군부(軍部) 제3중대 제1소대원으로 8개월간 훈련을 받고, 동부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24년 4월 통의부 재무부(財務部) 소속으로 독립운동 선전, 군자금 모집, 동지 규합, 일제 착취기관 폭파 등을 수행하기 위해 다물청년당 취지서 등 독립운동 문건 및 권총,탄약을 휴대하고 입국하여 신의주(新義州), 평양(平壤), 군산(群山)에서 준비활동을 펼친 후 출국하였다. 이후 국내로 재입국 해 1927년 음력 2~9월 목포(木浦), 김제(金堤) 등지에서 독립운동 선전 및 통의부원 모집 등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1928년 6월 경 체포된 조인현은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懲役) 4년을 받고 전주형무소(全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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