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昌洛
1893-09-2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趙昌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창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9월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조직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천마산대는 3ㆍ1운동 직후 1919년 12월 최시흥(崔時興)ㆍ최지풍(崔志豊) 등 대한제국 시절의 군인들이 조직한 항일무장단체이다. 대장 최시흥이 이끄는 500여 명의 단원이 화승총과 칼 등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뒤 천마산을 근거지로 일제 경찰서와 면사무소 공격, 일제 경찰과 친일 밀정 처단,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2년 여름 최시흥의 부하인 최오산(崔午山)은 조준용(趙俊龍) 등과 독립청년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조창락은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독립청년단에 가입해 1923년 9월 17, 18일과 9월 21일에 함께 희천군 북면 명문동(明文洞) 창참경찰관주재소(倉站警察官駐在所), 북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먼저 전신과 교통을 단절시키고 각처에 불을 놓은 후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을 공격하여 일제 경찰과 맹렬히 교전한 끝에,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경찰관주재소를 방화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조창락은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ㆍ방화죄ㆍ살인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7년 11월 15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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