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千壽
(1885) ~ (19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천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되었다. 의병장들은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된 후 서간도 지역에서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역량을 기르던 중 3·1운동이 발발하자 이를 계기로 기존 단체를 통합하여 무장투쟁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당시 조천수와 함께 활동한 대한독립단의 주요 간부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白三圭), 자의부장(諮議部長) 박치익(朴治翼),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부참모장 박양섭(朴陽燮), 총참모 조병준(趙秉準), 참모 송상규(宋尙奎)·강규묵(康圭默)·조응걸(趙膺杰)·이정근(李廷根), 총단장 조맹선, 부단장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 총무부장 김평식(金平植), 부총무부장 강유상(康有常), 총무원 김일(金鎰)·한관모(韓寬模),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 재무 이병기(李炳基), 회계 홍주(洪疇), 사법부장 이웅해(李雄海), 교통부장 양기하(梁基瑕), 선전부장 변창근(邊昌根) 등이다. 조천수가 활동한 대한독립단은 유하현 삼원보에 위치한 본부 및 국내, 서간도의 각 지단에 재무부를 설치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아울러 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독립군의 양성 또한 추진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양성을 통하여 국내에 진공하여 무력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대한독립단은 만주와 국내에서의 일본인 및 친일파 숙청 그리고 일제의 기관 파괴 등도 전개하였다. 조천수는 이 대한독립단 검찰원(檢察員)으로서 1920년 10월 1일에 동료 2명과 함께 통화현(通化縣)에 있는 친일 보민회장(保民會長) 김청현(金淸鉉)의 집에 들어가 회비 60원과 소지한 돈 10원을 빼앗았다. 그리고 김청현의 부친 김창화(金昌和)를 사살하였다. 조천수는 그 후 집안현(輯安縣)에 출장나갔다가 밀정 이완규(李完圭)의 밀고로 일경과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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