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台衍
1895-05-15 ~ 1945-04-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태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5년 3월 서울에서 물산장려를 통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에 가입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산직장려계 계원은 주로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130여 명에 이르렀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7년 3월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체포되었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열기가 고조되면서, 그는 1919년 7월경 배승환(裵昇煥)의 권유로 만주(滿洲)의 신흥학교(新興學校)에 입학할 목적으로 중국(中國) 랴오닝성[遼寧省] 안동현(安東縣)에 갔다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려고 했으나 도중에 병이 생겨 동년 9월 국내로 돌아왔다.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발기하고,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동년 9월 일경에 체포되어 5개월 고초를 치르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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