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泰煥
1901-04-15 ~ 1931-01-2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태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고향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건너갔다. 그는 오동진(吳東振)·윤학승(尹學昇) 등과 함께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을 조직하고 무장항일 투쟁에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14일(음)에는 장지환(張志煥)·이성찬(李成贊) 등과 함께 광제청년단의 국내 지단(支團)을 조직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 일경 사살, 일제 기관 파괴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10월 그와 행동을 함께 하였으며, 선천군청과 신의주역에 폭탄을 던졌던 윤학승(尹學昇)·윤학조(尹學照)·백봉즙(白鳳楫) 등은 만주 장춘(長春)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와 김석하(金錫夏)·장지환(張志煥)·이성찬(李成贊)·임용일(林龍日)·이학필(李學弼) 등은 다행히 피신하여 체포를 면하였다. 그는 그후에도 만주에서 무력항쟁을 계속하다가 1929년 9월에 일경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옥사하였다고 하나 상세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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