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學伊
1890-10-27 ~ 1953-06-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학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학이는 경북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월 1일 이후 만세시위 소식은 임동면에도 전해졌고, 특히 3월 17, 18일의 예안, 안동읍 의거의 소식 후 임동면 내의 애국 인사들은 3월 21일 편항(鞭巷)시장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시작하였다. 3월 21일 오후 2시 유연성(柳淵成)을 비롯한 10여 명의 주동 인물들이 시장 중앙에 나타났다. 모여든 군중 약 500명은 조학이를 비롯하여 유연성, 유곡란(柳谷蘭), 박진성(朴晋成), 이강욱(李康郁), 배대근(裵大根) 등을 선두로 하여 물밀 듯이 주재소로 쇄도해 갔다. 이때 이미 주재소 뜰 안에는 약 800명이 모였고 유교희(柳敎熙), 박재식(朴載植) 등이 이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드디어 경찰이 권총을 발사하자 조학이를 비롯한 군중들은 주재소를 공격하여 곤봉으로 주재소의 유리창, 책상, 의자 기타 기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서류 등도 파기한 후, 순사 내전심조(內田甚助)를 손으로 때리고 발로 밟았다. 그리고 일인 경찰에게서 뺏은 대검과 권총 또 주재소 내의 총 2자루, 경찰 칼 3자루, 탄환 44발, 순사 제복 등을 압수 파괴하여 그곳 우물 안에 버렸다. 결국 경찰 2명은 신덕리(新德里)로 달아났다. 성난 군중들은 이어서 임동면사무소로 몰려가 장부 및 문서류, 비품들을 파괴했다. 시위 후 체포된 조학이는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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