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亨信
1900-08-09 ~ 1970-05-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형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동월 4일 평남 강서군 사천(沙川)에서 부친 조진탁(曺振鐸)을 도와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후 부친은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후일 체포되어 순국하였다고 한다. 1920년 5월에는 김예진(金禮鎭)·최봉주(崔奉周)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독립단 여자청년단(大韓獨立團女子靑年團)을 조직, 반석(磐石) 대한청년단 단장에 선임되어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으면서 군자금 모집, 독립신문의 배포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21년 2월경 일경에 체포되어, 동년 4월 5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鎭南浦)지청에서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6월 가출옥한 후 만주로 건너가 북간도 홍범도(洪範圖) 휘하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