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薰錫
1899-07-27 ~ 1973-05-23·현대
이명·자·호 隱星, 舜汝, 新谷, 琰錫, 趙隱星, 趙舜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훈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조훈석은 1918년 3월, 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봄경부터 1927년까지 동아일보지국 및 시대일보지국을 경영하였다. 1924년 3월 조훈석은 경북 영양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동아일보 영양지국 기자로 지내면서 안동기자단 창립발기인이 되었으며, 같은해에 영양노동조합 이사가 되었다. 1925년 12월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혁청사(革淸社)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남쪽지방 주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혁청사는 대중에게 지식을 보급하며 대중이 잘살 수 있는 방도를 알리기 위해 주식회사로 조직하고 대중본위의 기관 잡지 『혁청』을 발간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인쇄물, 도서판매, 신문, 월간잡지 등도 경영할 예정이었다. 조훈석은 1926년 여름경 강원도 울진청년회에 가입하였고, 1927년 12월에는 신간회(新幹會) 울진지회 설립준비위원이 되었다. 1930년 10월에는 신간회 영양지회(英陽支會)에 가입하여 간부로서 활동하였다. 1930년 12월 23일경, 중국공산당 조선공작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영덕군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타파하고, 현 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공작위원회(工作委員會)’를 조직하였다. 공작위원회는 활동영역을 영동 6부에 정하고, 자신은 경북 영양 및 강원도 울진 2군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사회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된 조훈석은 1932년 1월 4일, 울진경찰서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강릉지청 검사분국에 송치되었고, 1932년 2월 2일, 경주지청 검사분국에서 횡령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1933년 12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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