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薰植
1864-10-1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조훈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포천(抱川)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新北面)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포천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만세운동의 소식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조훈식은 신북면을 중심한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조계식(趙啓植)·최학돌(崔鶴乭) 등과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하고 만세운동계획을 추진해 갔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30일로 정하고, 우선 군중이 많이 참가하게끔 만세시위의 참여를 촉구하는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선전문을 비밀리에 인쇄하여 각처에 배포하였다. 또한 이들은 만세시위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밤새워 인쇄·제작하면서 거사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30일에 이들은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는데, 이 때 인근 각지에서 모인 군중은 약 1천여 명에 달하였다. 조훈식은 1천여 군중과 더불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를 저지하는 일경의 탄압을 받아 시위대는 해산되고, 그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7월 5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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