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東律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동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 북청(北靑)에서는 1919년 3월 8일부터 북청 읍내와 노덕면(老德面), 상거서면(上車書面), 신창면(新昌面)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동률은 이 때 배포된 독립선언서를 읽고 그 취지에 찬성하여 1919년 3월 17일 속후면(俗厚面) 하천리(下川里)의 속후학교(俗厚學校)에 가서 교원 및 학생에게 “다른 학교에서는 이미 독립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데 이 학교에서는 어째서 이 운동을 실행하지 않는가? 곧 조선독립만세를 외쳐서 조선독립운동을 거행하라”는 취지로 연설함으로써 독립만세시위를 촉구하였다. 활동 후 체포된 주동률은 1919년 5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고,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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