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丙錄
(1891) ~ (1921-1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병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7월 함남(咸南) 풍산(豊山)에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풍산통신지국(豊山通信支局)을 설치하였다. 군비단은 장백현(長白縣) 17도구에 근거를 두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주병록은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에 이원청년회(利原靑年會)를 설치하여 이를 표면 단체로 국내와 해외의 동향 및 일제의 통치와 독립운동가의 상황을 파악하여 대한독립군비단에 보고하였다. 보고한 내용은 주로 외국 신문·잡지에 보도된 조선독립의 여론, 3.1운동이후 일본정부의 시정방침, 이원군 지방의 금융상황, 경찰의 배치 상황, 3.1운동당시 처벌받은 사람이나 사망한 사람의 이름과 주소 등이었다. 주병록은 이후 노령(露領)으로 가서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 하사로 활동하던 중 1921년 12월 이만에서 일본이 후원하는 러시아 백군과 싸우다 전사(戰死) 순국하였다. 1950년 조선인 유격대가 전사한 곳에 기념탑이 세워졌는데 주병록의 이름은 41번째에 새겨져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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