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炳和
1890-10-06 ~ 1931-01-1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朱炳甲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병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진해(鎭海) 사람이다. 1923년 6월 경남 진해소작회(鎭海小作會)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김종건(金鍾健)·배효면(裵孝眠)·주병헌(朱炳憲) 등과 함께 진해소작회를 이끌면서 부당한 소작료 착취에 대항하는 등 3년여 간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그는 소작쟁의를 주도하던 중 1924년 6월 20일에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치르다가 동년 8월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벌금 50원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농민운동에 더욱 매진한 그는 1925년 10월에는 한국인 경작의 농지가 불법으로 일인에게 위조 대부된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일제의 불법적인 토지침탈을 응징하기도 하였다. 1927년 2월 민족협동전선운동의 결실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그는 신간회지회 설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1927년 10월 17일 신간회 창원지회(昌原支會)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에 선임된 그는 신간회의 운영체제가 바뀌는 1929년에는 창원지회의 집행위원장으로 다시 선출되어 신간회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중 1931년 1월 11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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