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永秀
(187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영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해(寧海) 사람이다. 강기동(姜基東)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북부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강기동은 서울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고안(高安) 헌병분견소의 헌병보조원으로 있다가 의병이 되기로 결심하고, 1909년 1월 15일 헌병분견소 내에 갇혀 있던 길인식(吉仁植) 등 2명의 의병과 함께 장총 2정, 탄환 300발, 권총 1정, 총검 5정을 탈취하여 경기 동북부지역의 최대 연합의병 부대인 이은찬(李殷瓚) 의진에 투신하였다. 이은찬 의진에서 강기동은 헌병보조원 시절에 입수한 정보를 활용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같은 해 3월 31일 이은찬 의병장이 일경에 붙잡힌 이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의진을 이끌고,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여 전투역량을 강화하면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강기동 의진은 경기 양주·양평·포천·연천, 강원도 가평 등지의 산간지대를 무대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주영수는 이같은 강기동 의진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1909년 1월 강기동 의병장의 지휘 아래 3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양주(楊州)군 북면에서 보급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1910년 4월 2일 강기동 의병장의 명령을 받고 미리 군자금 헌납을 요청하고 만약 이를 거절할 경우 군율에 의하여 처단할 것이라고 통첩해 둔 경기도 포천(抱川)군 외소면 이곡리의 친일 이장 이병덕(李秉德)의 집에 돌입하였다. 그리하여 군자금 헌납을 권유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1910년 4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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