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永徹
1885-09-25 ~ 1929-02-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영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19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門內面 東外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늦게나마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3·1독립운동을 전후하여 일경에게 소위 사상불순으로 주재소 연행과 가택수색을 빈번히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동지와 학생들을 규합하고 독립운동 거사를 추진해 오던 중 해남읍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된 지 만 1년이 지난 1920년 4월 23일 우수영(右水營)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날 우수영에서 소년들이 독립만세운동 호응자 성명표를 만들어 손도장을 찍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우수영 읍내로 행진하다가 이곳 보통학교 교사들에게 태극기를 빼앗기고 운동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비로소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곳 유지들의 열렬한 활동과 청년학생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격문을 만들어 배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5백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주동자 한 사람으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1920년 5월 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후에 고문으로 인한 조골절개수술(助骨切開手術)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1929년 2월 25일 병사(病死)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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