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義奎
(185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의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 장진(長津)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장진군(長津郡) 상남면(上南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를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주의규는 김윤석(金允錫)과 함께 평소 일본 경찰로부터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그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립만세운동이 각지에 파급되자 일본 헌병대는 이들을 예비 검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헌병 보조원 나치준(羅致俊)을 파견하여 그들을 연행케 하였다. 그러나 주의규와 김윤석은 오히려 연행하러 온 나치준을 응징하여 전치 20일의 부상을 입힌 다음 이동술(李東述) 집에 감금시켜 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의규와 김윤석은 일제에 대한 평소의 반감을 표면화하여 3월 19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드디어 3월 19일이 되자 주의규를 비롯한 주동자들은 운수리에서 군중 수백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만세운동은 운수리에서 덕실리(德實里)까지 계속되었으나, 거기서 헌병들의 제지를 받아 해산하였다. 주의규는 이날 시위로 붙잡혀 1919년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상해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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