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宗贊
1893-06-17 ~ 1933-08-2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朱宗讚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종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거제군(巨濟郡) 이운면(二運面, 지금의 장승포) 옥포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거제도 이운면 일대는 뛰어난 어장들이 많은 곳으로, 일찍부터 일본인의 어장 침탈이 잦았다. 때문에 이곳은 연해 조선인들의 항일정신이 어느 곳보다 앙양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때 이운면 아주리(鵝州里)에 사는 윤택근(尹澤根)은 이인수(李麟洙)·이주근(李柱勤) 등과 더불어 1919년 4월 3일 아주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유인물 및 태극기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4월 3일 오후 7시 30분경, 이들은 재빨리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준 뒤,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장 복판에 세우고 이들 3인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옥포리 시장에서는 주종찬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적기(赤旗) 7개를 옥포리 시장에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많은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급히 출동한 일경의 탄압으로 군중은 해산되고 그는 검거되었다. 그는 1919년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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