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鎭洪
(185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진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함남 이원군(利原郡) 남면(南面) 차호리(遮湖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원군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0일 아침 일어났다. 700여 명의 군중이 읍내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다 주모자 6명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3월 11일 오후 1시 김탁(金鐸)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주민들은 차호보통학교 교정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차호보통학교 학생 및 주민 1천 5백여 명은 '조선독립국'이라고 쓴 큰 기를 앞세우고 헌병주재소ㆍ면사무소ㆍ차호리 시장ㆍ기독교회 등을 돌아다니며 시위하였다.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를 때마다 주동 인물들이 앞에 나와 연설을 하고는 만세를 불렀다. 이날의 시위는 경찰과의 충돌이 없이 오후 4시경에 끝났다. 그러나 그날 밤 경찰은 김탁 등 주동 인물을 검거하였다. 차호의 시위는 12일에도 차호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해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이날 저녁 6시 학교 교정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다음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헌병대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밤 10시에 해산했다. 이후 체포되는 사람들이 속출하자 시위는 한동안 주춤하였다. 주진홍은 이날의 만세시위로 체포되어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5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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