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興瑞
1925-07-21 ~ 1978-11-2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주흥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일제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후 식량과 자원을 강제 수탈하는 한편 징용·징병 등의 각종 명목으로 한국인을 침략전쟁의 일선으로 끌어가자 그는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1942년 6월 일본 동경에서 동포학생들을 규합하여 항일독립운동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그후 그는 1944년 2월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함남 북청에서 놀이터에 모인 청년남녀 3백여명에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역설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고 한다. 이일로 인하여 동년 5월 소위 보안법 및 육해공군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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