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相稷
1891-10-04 ~ 1927-03-2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陳尙稷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진상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진상직은 출판을 통한 민족 계몽을 위해 1908년 태극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태극학회가 대한흥학회로 통합되자 대한흥학회 영흥지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진상직은 고향인 함경남도 영흥군 홍인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옛 한국의 태극기를 4매 제작하였다. 3월 16일과 17일 양일간 홍인면 도정리의 김재석 외 여러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찬성을 얻어냈다. 17일 오후 4시 경 남산리 군자루(君子樓) 앞 공터에서 약 20명의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그에 따라 1919년 4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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