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成七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진성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仙掌面) 군덕리(君德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선장면 군덕리, 돈포리(頓浦里)의 정수길(丁壽吉) 등은 독립선언과 전국적인 만세시위를 지원하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군덕리시장 장날인 4월 4일에 장터로 나가 군중들에게 ‘조선독립시위운동’에 참가하도록 권유했다. 약 200명의 시장 군중들도 호응해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대정리(大井里) 진성칠(陳成七)은 정흥신(鄭興信)·정향수(鄭香秀)·김진여(金振汝) 등 같은 마을의 30~40대 청장년들과 같이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어 군중들은 선장헌병주재소로 이동했다. 오후 2시 30분경쯤 주재소에 도착한 약 200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외치고 투석으로 저항하거나 구내로 들어가 창문 유리 등을 깨트렸다. 이에 온양에서 파견된 보병 80연대 상등병 이하 7명이 시위대에게 총기를 발포했다. 그로 인해 현장에서 1명이 순국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이 체포되었다. 진성칠은 이러한 선장면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장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어 온양 온천리(溫泉里) 헌병분견소에 압송되었다. 1919년 4월 11일 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분견소장에게 태 40도의 즉결처분을 받고 태형의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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