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立夫
1900-08-21 ~ 2001-02-0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진입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천리푸(陳立夫)는 1931년 11월 중국 국민당 조직부장으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자금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5,000달러를 제공했다. 1934년 7월 한중 연합 제2차 대표대회에 대리인 천바이푸(陳百鷗)를 참석시켜 한국독립 달성을 위한 급진대(急進隊) 조직에 관한 내용을 논의케 했다. 1935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군 창설 계획을 지지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난징(南京)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신변 보호에 힘썼다. 1941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충칭(重慶) 이동 후에는 국민당 정부 고위 관리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전담하기도 했다. 1942년 11월 한중문화협회 성립대회에 참석한 후 명예이사에 추대되었다. 이후 내무사무국(內務事務局) 인력과(人力課) 책임자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매월 6만 달러의 원조금 지급에 관여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구제총회협제위원회에도 참석한 바 있다. 천리푸는 천궈푸의 동생이자 천치메이(陣其美)의 조카로, 일가 모두 한국 측 항일 지사들과 밀접한 교류를 맺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다대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국민당 정부 요인이자,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명예고문을 역임하고, 1949년 초대 주한 특명전권대사를 지낸 샤오위린(邵毓麟)은 천리푸 등의 활동에 대하여 “천궈푸·천리푸 두 선생의 숙부이자 국민당 원로인 천치메이 선생은 생전에 한국 독립운동 지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었다. 이런 인연과 더불어 두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들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변함없는 지원을 보내었다”라고 평하였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1968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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