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志燦
(1855-01-23) ~ 미상·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진지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진지찬은 함남 풍산군(豊山郡) 읍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3월 초, 풍산의 천도교인 맹시정(孟時楨)은 김병식(金炳軾)의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강희준(姜熙俊)을 만났다. 강희준은 이들에게 3월 1일부터 서울에서 손병희가 주도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 다. 맹시정은 3월 13일 하지경리(下地境里) 천도교실에서 이계술(李啓述)로부터 풍산 시위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듣고 분연히 떨쳐나설 결심을 하였다.김병식과 맹시정 등은 3월 14일 하지경리의 호암(虎岩)이라는 곳에서 군중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완리(老院里) 방면으로부터 오는 많은 군중을 이끌고 풍산 천도교구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이미 교구장인 주병남(朱炳南) 등 천도교 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군중이 1,000명을 넘었다. 신도들은 교당 안에 들어가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다음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하여 헌병분견소 앞에 이르렀다. 이때 헌병들의 총격으로 군중 2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는 오후 4시경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진지찬은 7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벌금 30원, 노역기간 30일을 받고 공소하여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벌금 20원, 노역기간 20일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상고했으나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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