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學哲
1896-02-26 ~ 1950-10-1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진학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봉산군 사리원(沙里院) 장날을 이용하여 서종면(西鍾面) 단장리(丹墻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일 사리원에서 천도교·기독교인들에 의해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이에 고무된 진학철과 사인면(舍人面) 만화리(萬和里)교회 조사 박기영(朴基永)·학교교사 이기풍(李基豊)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0일 사리원 장날로 잡고,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제반준비를 갖추었다. 거사 당일인 3월 10일 오전 9시 경, 그들은 서종면 단장리에서 그곳 기독교인과 인근의 사리원장으로 가는 주민들 200여 명이 모이자, 진학철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군중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는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군중을 주도하다 사리원에서 급히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이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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