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道然
1900-01-16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網鐵, 金學成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도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4년 중국에서 정의부(正義府) 검무원(檢務員)으로 임명되어 1925년 평남 대동군(大同郡) 일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의부는 1924년 중국 화전현(樺甸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참의부(參議部)ㆍ신민부(新民府)와 함께 3부로 통칭되었다 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ㆍ의성단(義成團)ㆍ광정단(匡正團)ㆍ노동친목회ㆍ고본계(固本契)ㆍ대한독립군단ㆍ학우회 등이 연합해 결성되었으며, 중앙집행위원장 이탁(李鐸), 총무위원장 김이대(金履大), 군사위원장 지청천(池靑天), 재무위원장 오동진(吳東振) 등이 선임되었다. 흥경현(興京縣) 흥화중학(興和中學), 유하현(柳河縣) 동명중학(東明中學), 화성의숙(華成義塾) 등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한인 농민들의 생활안정과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만주와 국내의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4월 그 중심 인물들이 국민부(國民府)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1924년 8월 중국 봉천성(奉天省)에서 정의부 총관소(總管所) 검무원으로 관할 지역의 한인에 대한 징세사무를 맡아 수행했다. 1925년 10월 31일 차선학(車善學)ㆍ강명선(康明善) 등과 권총 1정과 탄환 80여 발로 무장하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평남 대동군(大同郡) 김제면(金祭面) 부창리(孚暢里)ㆍ재경리면(在京里面) 갈산리(葛山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6년 1월 6일 대동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6년 1월 2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총포화약류취체령시행규칙(銃砲火藥類取締令施行規則)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8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0년 3월 28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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