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明學
미상 ~ (1921)·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명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소속으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순국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11월 설립되었다. 부민단(扶民團)과 신흥무관학교 등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여 한족회(韓族會)로 개편함과 동시에 군사조직으로 군정부(軍政府)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상룡(李相龍), 부총재 여준(呂準), 참모장 이탁(李沰) 등이 선임되었다. 군자금 모집과 선전활동 및 군사활동에 주력하였다. 군자금의 모집은 주로 한족회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군사활동은 신흥무관학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었다. 서로군정서는 국내의 친일파 관료, 적의 밀정(密偵) 및 서간도 지역의 친일단체인 보민회,거류민회 등의 간부들에 대한 처단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주로 핵심부대인 의용군(義勇軍) 제1중대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이 부대는 백서농장(白西農庄)을 운영하던 채찬(蔡燦),신용관(辛容寬)에 의해 지도되었다. 1924년 11월 25일에 정의부 결성에 참여함으로써 그 발전적 해체를 도모하였다. 차명학은 서로군정서의 사무원으로 1921년 가을 국내로 들어와 함남(咸南) 단천(端川)에서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다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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