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炳先
1894-10-11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車丙善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병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중국 길림성 왕청현에서 태극단에 가입하여 상등병이 된 뒤 1921년 평북 후창군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하여 순사부장에게 중상을 입혔으 며, 평남 영원군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에서 오춘근(吳春根)과 함께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받은 뒤 상등병이 되었다. 태극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장백현(長白縣), 임강현(臨江縣)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 (鄭森承), 김동준(金東俊) 등이 조직하였다. 태극단은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또한 장백현 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 광복단, 흥업단(興業團), 대진단(大震團) 등과 연합하여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 음력 5월 단장 임석우(林錫祐)의 명령으로 중대장 이영식(李英植), 소 대장 고인식(高仁植)의 지휘 아래 임강현(臨江縣)을 출발하여 음력 7월 평북 후 창군(厚昌郡)에 도착하였으며, 같은 달 28일 후창군 동흥면(東興面) 소재 남신주 재소(南新駐在所) 경찰들과 교전하여 순사부장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따로 소대장 고인식을 따라 평남으로 이동하여 음력 7월 22일경 영원군(寧遠郡) 대흥 면(大興面)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8월경 함남 원산에서 소대장 고인식 등과 함께 평강경찰서(平康警察署)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5년 3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강도·대정(大正)8년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약 9년 1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33년 8월 31일 출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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