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炳郁
1898-01-2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車正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병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음력 10월 러시아로 이주하여, 1920년 11월 중순 혈성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강국모(姜國模) 부대로 편입되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만주지역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였다. 1922년 고려혁명군 하사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였다. 같은 해 8월 조경철(趙京哲)과 계획을 협의하고, 박종주(朴宗柱)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 강하치(江河峙)와 덴베치얀, 연추(煙秋), 몬도쿠리요우 등의 지역에서 같은 해 10월 무렵까지 군자금과 군수품 등을 모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23년 1월 간도 용정촌(龍井村)으로 이주한 후 사립대성학교(私立大成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2월 교내 동료와의 의견충돌로 인하여 같은 해 4월 용정촌에 설립된 사립동양학원(私立東洋學院)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사립동양학원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방한민(方漢旻)은 연길현 국자가(局子街)에서 조선혁명단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선전물을 배포할 선전부와 암살·파괴 등의 임무를 담당할 군사부를 설치하였다. 이때 방한민의 계획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8월 12~13일 무렵 연길현 국자가 두도구(頭道溝)에서 천도경편철도 개통식이 개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개통식에 맞춰 일본영사관과 공관에 대한 투척, 주요 관원 암살과 신사상 선전문을 살포하여 민중봉기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개통식이 연기되자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7월 8일경 용정촌 국자가 두도구에 위치한 일본영사관과 공관에 폭탄을 투척해 주요 관원들을 암살하고 선전문을 살포하기로 결의하였다. 1923년 8월 이러한 활동을 포착한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24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과 강도’ 등을 이유로 징역 8년을 받았다. 이후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8년 4월 20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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