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錫錄
(189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석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2월 25일부터 6일간 전북 임실(任實)ㆍ전주군(全州郡), 전남 장성군(長城郡) 일대에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석용 의병장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전북 임실군의 상이암(上耳菴)에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수립한 후 사방에 격문을 보냈다. 1907년 음력 9월 전북 진안(鎭安)의 마이산(馬耳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임실ㆍ진안ㆍ남원(南原)ㆍ장수군(長水郡) 등 전북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력 2월 25일부터 6일간 이석용 의병장이 부하 7명과 함께 전북 임실ㆍ전주군, 전남 장성군 등지에서 활동할 당시 그 짐을 지고 다니는 임무를 맡아 이남용(李南用)과 함께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8월 칙령 제325호 대사령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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