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應鎬
1907-08-24 ~ 미상·현대
이명·자·호 車一, 野町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차응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동청년회는 1924년 10월경 길림성 안도현(安圖縣)에서 조직된 대동회(大同會)의 전신이다. 대동회는 연두익(延斗翼) 등이 대동청년회를 개편해 조직한 것으로, 총부(總部)를 액목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 두었다. 의열단(義烈團), 의용군사회(義勇軍事會), 광복단(光復團), 국민회(國民會), 독군부(督軍府) 등이 대동회에 참여했으며, 각 단체의 위원 합의제로 운영됐다. 대동청년회 소속으로 활동하던 차응호는 1924년 10월 18일 대동회원 이영숙(李永禧)의 지휘 아래 공정단원(公正團員) 조명선(趙明善), 적기단원(赤旗團員) 이용권(李龍權) 등과 연길현 수신사(守新社) 비암촌(飛岩村)을 찾았다. 이들은 이곳에 사는 유재홍(劉在洪) 외 재산가 7명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때 차응호 등은 대동회 임명장, 독립공채증권 및 선전문(宣傳文), 권총, 폭탄 등을 휴대하고 있었다. 차응호는 1925년 4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1919년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천형무소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 2월 칙령 제12호에 의해 감형돼 1928년 12월 19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