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景燾
생몰년 미상
이명·자·호 蔡敬燾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채경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민종식(閔宗植) 의진의 유격장(遊擊將)으로 충남 홍주(洪州)·연산(連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민종식은 경기도 여주(驪州) 출신으로 1882년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을 지냈다. 민종식은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처음 충남 정산(定山)군 천장리(天庄里)를 거점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군수품을 준비하는 등 의병 봉기를 준비하였다. 그런 다음 1906년 4월 처남되는 이용규(李容珪)와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김광우(金光祐)·조희수(趙羲洙)·정재호(鄭在鎬)·황영수(黃英秀)·이상구(李相龜) 등과 함께 충청도 홍산(鴻山)에서 거의하였다. 채경도는 이 때 민종식의 거의계획에 참여하여 유격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민종식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같은 해 5월 19일 홍주성을 탈환하는데 앞장섰다. 이후 그는 일본군 수비대와 홍주성에서 10여 일 동안의 공방전을 전개하여 적군 3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데 참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화력 및 병력의 열세로 5월 31일 홍주성이 함락되자, 그는 민종식 의병장과 함께 후일을 기약하고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6월 충남 연산군 부흥리(富興里)에서 4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오상준(吳相俊)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붙잡혀 공주부에서 악형을 당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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