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鳳善
(188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채봉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국호남(鞠湖南) 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흥덕(興德)·부안(扶安)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같은 시기에 국호남 의병장이 의진을 조직하여 대일 투쟁을 전개하자, 채봉선은 1909년 경 국호남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국호남 의병장과 김낙선(金洛先)·최동이(崔同伊)·박춘집(朴春輯)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 수합 활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그는 총기 25정 및 도검 1자루를 휴대하고 전북 흥덕군 후포(後浦) 거류 일본인 평정덕장(平井德藏)의 집을 습격하고, 군자금 수합을 방해하는 주인 등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그는 집안을 수색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고 일본인 집을 불태웠다가 붙잡혀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종신징역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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