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炳萬
1910-04-21 ~ 1975-05-21·현대
이명·자·호 千鳳出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천병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30년 임시정부(臨時政府)에서 활동하던 친형 천병일(千炳一)의 부탁을 받고 조카 천 경(千璟)·천용구(千龍九)·김종대(金鍾大) 등 3명을 중국(中國)으로 보내어 상해조선인군관학교(上海朝鮮人軍官學校)에 입교시켰다. 그후 부여에서 계속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고 한다. 1937년 2월 1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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